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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아의 재미난 이야기/영화 감상평

"세인트 클라우드"를 보고서

주의사항!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고, 미리 내용을 보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이 포스팅을 보시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포스팅은 전체 내용의 상당 부분을 요약한 포스팅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정보 ]


[ 대략적인 줄거리 ]

요트계의 유망주였던 찰리는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동생 샘을 잃은 뒤, 요트를 뒤로하고 묘지기로 지낸다. 찰리는 죽은 샘과의 약속에 따라 매일 일몰 축포가 울릴 시간이 되면 1시간씩 샘의 야구 연습을 봐주기 위해 숲 속 어귀로 샘을 만나러 간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 찰리는 샘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찰리에게 다가온 아름다운 여인 테스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던 찰리는 테스가 대서양을 항해하는 요트 경기를 준비하던 중 폭풍 속에 실종된 사실을 알게 되는데..


[ 기억에 남는 대사 ]

"후회는 없어. 최선을 다해 살아왔거든." - 플로리오 페렌트
"그게 위로가 되나요?" - 찰리 세인트 클라우드
"그것만이 위로가 된단다, 찰리." - 플로리오 페렌트

"이유를 잘 생각해봐." - 플로리오 페렌트
"무슨 이유요?" - 찰리 세인트 클라우드
"왜 너지? 왜 네게 기회를 다시 주신 걸까?" - 플로리오 페렌트

"용서해, 샘" - 찰리 세인트 클라우드
"사랑해, 형" - 샘 세인트 클라우드

"우린 영원히 형제야." - 찰리 세인트 클라우드
"약속해?" - 샘 세인트 클라우드
"약속해." - 찰리 세인트 클라우드





요트계의 유망주였던 찰리.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천부적인 요트를 모는 재능이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동생에 대한 사랑, 죄책감, 그리고 그가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입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동생 샘을 잃게 된 찰리가 겪었을 그 심적 고통은 말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데다 자신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더더욱 그에게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겠지요.



그 죄책감 때문인지 찰리는 요트를 뒤로 하고 묘지기로서 지냅니다. 심지어 죽은 샘을 차마 보내지 못하고 그와 생전에 했던 약속에 따라 매일같이 일몰 시간에 1시간씩 그와 만나 야구 연습을 하지요. 찰리에겐 이것이 기적이라 느껴졌을지는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행동에 위화감을 느끼고 몇몇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찰리 역시 그것이 정상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죽은 샘과 만나고 있음을 말하지는 못했지요. 게다가 찰리는 동생 샘뿐만이 아니라 죽은 친구 설리번마저 보이기까지 했으니까요.

어쨌든 찰리는 샘이 죽은 이후에도 샘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찰리는 교통사고로 인해 심장이 멈췄던 자신을 살린 구급대원 플로리오 페렌트를 만나게 됩니다. 플로리오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되었지만, 자신의 인생에 후회가 없다 말하지요.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에 후회가 없더란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찰리에게 묻습니다. 왜 그러고 살고 있느냐. 자신이 힘겹게 살려낸 찰리가 묘지기로 젊음을 낭비하고 있음에 큰 유감을 표했지요. 그리고 그에게 말합니다.
 
"신께서 네게 다시 한번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이유가 있을게다. 그 이유를 잘 생각해봐."


플로리오와의 만남 후에 찰리는 그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부정하는 듯 보이지만 내심 흔들리며 고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테스를 보게 됩니다. 테스가 아름다운 여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찰리가 그녀에게 끌리었던 이유는 운명이니, 뭐니 하기 이전에 그의 마음 속에 아직도 요트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테스는 6개월동안 요트로 대서양을 항해하는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중인 강인하고 모험적인 여인이었지요. 어쩌면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끌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요.


샘과의 약속에 얽매여 있던 그였지만 여전히 요트에 대한 열망이 들끓었던 찰리는 그동안 자신이 구상해오던 요트의 구조에 대해 부지런히 연구하며 그림을 그려두었습니다. 그리고, 테스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찰리는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그림을 보여주지요. 테스는 그런 찰리에게 호감을 느끼며, 그가 요트를 다시 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들의 사이는 호감이 있을 뿐 사랑에 빠진 연인관계는 아니었지요.

그리고 그러던 중에 테스는 대회의 마지막 연습을 위해 폭풍 속으로 요트를 타고 들어갑니다. 그의 코치는 그런 그녀를 만류하지만 테스는 폭풍을 비껴가겠다고 둘러대고는 폭풍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녀의 내심은 대서양을 항해해야되는데 폭풍도 못이겨내고서는 대서양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녀는 대단히도 모험적이고 무모하기까지한 여인이었습니다.


찰리는 묘지의 골치덩이 거위 떼를 쫓아내던 중 다시 테스를 만납니다. 그녀가 그녀의 아버지의 묘지에서 머리에 상처를 입은 채 잠들어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러던 중에 요란스레 거위 떼를 쫓아내는 찰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 그에게 말을 겁니다. 찰리는 그녀가 상처입은 것을 보고 상처를 소독하고 응급처치를 해 줍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가 어제 폭풍 속에서 요트를 타던 중에 이리저리 휘둘려 입은 상처라 말합니다. 사실 여기서부터 조금 위화감이 있긴 했습니다. 묘지에서 잠들어 있던 그녀도 그렇지만 상처까지 입은 상태. 그리고, 찰리는 죽은 사람을 볼 수 있기까지 했지요. 그것이 그의 망상이든 기적이든간에 말입니다.


상처입은 테스를 치료해주었기 때문일까요, 이들의 감정은 서서히 호감에서 사랑으로 싹트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테스는 자신이 6개월간 떠나 있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찰리와의 관계를 어찌 해야할지 몰라 합니다. 찰리가 자신과 함께 가주면 좋으련만.. 찰리는 찰리대로 동생 샘과의 약속 때문에 그녀를 따라갈 수가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다잡지 못합니다. 하루동안 테스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졌던 찰리는 그녀에게 자신이 죽은 샘을 만나고 있는 사실을 들키고 맙니다. 물론, 테스의 눈에는 샘이 보일리 만무했지요. 다행히도 그런 찰리를 테스는 이해해주었지요. 그리고 정렬적인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지요. 테스의 요트가 폭풍 속에서 실종되었다는 것입니다. 테스와 찰리 둘 다 그 사실을 알게 되고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테스는 찰리에게 자신을 찾아달라 부탁하지만, 찰리는 샘과의 약속에 묶여 있어 쉽게 그러겠다 말하질 못합니다. 그리고 혼란에 빠져 고통스러워하지요. 그러던 중 플로리오의 아내가 그에게 찾아옵니다. 플로리오가 암으로 결국 죽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 찰리에게 전해달라던 물건을 그에게 건냅니다. 평소 그가 차고 다니던 절망의 성자 유다의 목걸이였지요. 그리고 그가 전해달라던 한 마디. "왜 너지?"라는 말을 전하고는 그의 아내는 떠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찰리는 결국 결심을 하고 테스를 찾으러 가지요. 그녀가 어디 있는지, 대략적인 위치는 이미 테스 자신에게 들어 알고 있으니 자신만이 그녀를 구할 수 있다 확신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를 구해낸 찰리는 이후 요트를 타고 여행을 함께 떠나자며 테스에게 권하지요. 그들은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로맨스도 아니요, 그렇다고 판타지도 아닙니다. 신학적인 내용의 영화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이 영화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굉장히 매력적인 영화이지요.

죽은 동생을 잊지 못하고 차마 보내지 못한 채 샘과의 약속에 얽매여 삶을 살아가던 찰리. 그리고 테스를 구하기 위해 동생과의 약속을 어기고 떠나던 찰리. 그로 인해 다시는 샘을 볼 수 없게된 찰리. 다시금 샘과의 약속을 하는 찰리. 이 모든 과정이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상행동과 그 이후에 치유 과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보내지 못하고 과거에 묻혀 사는 사람이 어디 영화의 주인공 찰리 하나뿐이겠습니까. 세상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요. 죽은 아들이 다시 돌아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것만 같아 죽은 아들의 몫까지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 죽은 아내의 옷을 이따금 끌어안고 흐느끼는 남편,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스러워 차마 아버지의 묘에 찾아가지 못하며 슬퍼하는 아들 등등.

정상적인 경우에는 죽은 이들과는 그만 이별을 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야지요. 그들을 잊고 살 필요는 물론 없지만 그들에게 얽매여 현실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지요. 때때로 이러한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내면적으로 심리적으로 병들어 있어서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묶여 살아가는 이들은 그런 과거로부터 이별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지요.

이 영화는 그러한 과정을 그리고 그 과정이 무척 힘이 들지만 그로 인해 더 나은 삶이 가능한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