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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있는 곳/도종환 시인의 '시에게 길을 묻다'

'詩에게 길을 묻다' -도종환 시인- 의 강의를 듣고




행복한 삶, 시에서 찾는 행복, 여유.

도종환 시인의 삶 속에 있는 시에 대한 이야기.

 

 

2011년 1월 20일 목요일 오후 1시 50분 도봉구청 대강당에서 있었던 도종환 시인의 강연. 구청에서 공익 근무 중인 나는 엘레베이터에 부착된 홍보 포스터를 보며 가슴이 설레었다. 평소 글쓰는 데 관심이 많았기에(글솜씨는 부족하지만) 그 설레임은 더더욱 강렬했던 것 같다. 어제 당일 날 강연을 앞둔 10분 전이 되어서 방송으로 공고가 내려왔다. 강연이 있으니 관심있는 직원 분들은 들으러 오라는 말을 들으며 슬며시 고개를 든다. 보아하니 아무도 안 가는 분위기. 그래서 슬쩍 물어보았다. 강연을 듣고 와도 되냐고. 흔쾌히 허락을 얻은 나는 부리나케 강당으로 갔다. 강당을 빼곡히 채운 사람들의 모습에 도종환 시인의 인기를 사뭇 체감했다. 하긴, 수능시험에까지 시험문제로 그 분의 시가 출제되는 것을 그 인기가 이 정도에 미치는 것도 신기할테지. 그렇게 많은 인파들 사이에 다행히도 맨 앞자리에 자리가 남아 있다. 누가 앉을새라 부지런히 발을 놀려 앞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까,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야 쓸 수 있다."

 

라일락 꽃 -     도종환-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비오는 봄날의 어느 날  길을 걷다 우연히 라일락 향이 어디선가에서 느껴졌을 때 걸음을 멈추고 어디서 라일락 향이 나는지 두리번 거리며 찾던 시인은 마침내 꽃을 보았다. 내가 꽃을 찾은 것이 아니라 꽃이 나를 부른 것이다. 그리고 꽃이 내게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꽃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배꼈고, 그것이 시가 되었다.

 

 이렇게 비유하시며 시인께서 하시던 이야기는 우리는 바쁜 삶에 치여 대부분 여유를 잃어버리고 앞으로만 치닫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삶에서 여유를 되찾아야만 우리는 비로소 주변에 있는 행복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꽃    - 고은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갈 때는 볼 수 있었던 꽃을 왜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을까?

시에는 모든 메시지가 있다.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올라갈 때는 바쁘니까,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는 목표가 있으니까 꽃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 없었던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수급불유월(水急不流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급하게 흘러가도 달은 흘러가지 않는다"라는 말이지요.

 

그것은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단지 우리가 못 보고 지나쳤을 뿐이지. 삶에서 행복이란 그런 것일 것이다.

 

 

소망적 사고 -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문학적 사고.

 

 그 예로 들어 제빵왕 김탁구의 이야기를 꺼내시던 도종환 시인. 본인은 제빵왕 김탁구를 보지는 못했지만 김탁구가 어떤 케릭터인지는 시인의 이야기를 통해 잘 이해하게 되었다.

 

김탁구라는 인물은 배운 것이 부족하지만 그의 삶에 태도가 항상 적극적이었다. 다소 거칠어도 "모르겠어요. 모르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가르쳐주세요. 열심히 배워볼테니까!"라는 태도를 가지고 달려들었고 그에게 매료된 주변 사람들이 김탁구와 같이 변해가더라. 그리고 그 본성이 선했고, 항상 정정당당했던 김탁구. 그 주변에 도사리던 온갖 시련과 장애물들과 부딪치며 앞으로 나아가던 김탁구를 보며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김탁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물론 현실에서는 돈 많고 뒷배경이 든든한 인물들이 더 성공하기 쉽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선한 사람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소망적 사고. 그러한 마음이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다면 정말 사회가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담쟁이 - 도종환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논어에 군자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 동이불화(同而不和) 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지만 소인은 서로 같은 듯 하면서도 화합하지 못한다.

화이부동하는 사람은 소통하고 대화하며 유연하고 협력할 줄 알며 서로 공존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동이불화하는 사람은 서로 대립하고 싸움하며 경직되어 있고 경쟁하며 지배하려 들고 전쟁을 하게 되는 사람이다.

(즉 힘을 사랑하는 사람)

 

도종환 시인은 담쟁이를 보며 물도 없고 뿌리도 내릴 수 없는 담을 타고 서서히 오르는 그 모습이 힘겨워 보였나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담쟁이의 잔뿌리들이 서로 서로 엉겨있는 것을 보시고 서로 손을 맞잡고 협력하는 모습으로 서로 위안삼으며 힘을 합쳐 시련을 견뎌내는 모습으로 보았다.

 

인터넷 신문 기사에서 설문 조사를 통해 평생에 한 편의 시를 가져가야 한다면 가져가고 싶은 시에 1위로 담쟁이가 뽑히셨다며 감사해하면서도 그만큼 현 시기가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 담쟁이라는 시는 아무래도 저작권을 받기는 힘드니 부디 이 시의 한 구절이라도 가져가셔서 자기 것으로 삼으시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시라는 것은 내가 아파 혹은 내가 감명받아 울면서 쓰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그 시를 보고 울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어느 수녀님들의 이야기

 

누군가의 자서전을 쓰는 일을 맡고 계시던 도종환 시인께서 한참 일이 바쁠 적에 전화 한 통을 받으셨다. 어느 수녀님들로부터 온 전화였는데, 도종환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책을 한편 내는데, 그것을 보고 글을 좀 써달라는 것이었다. 바빠서 안된다고 거절하였지만 수녀원장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와서 간곡한 부탁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글을 한번 보내보라 해서 받게 된 이야기.

 

이 수녀원은 이런 저런 말썽을 부려 소년원에서 있다가 일정 기간동안 수녀원에서 사회 적응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그런 말썽꾸러기들을 맡아 돌봐주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워낙 말썽꾸러기들인지라 밖으로 줄행랑을 쳐 속을 썪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전화기를 부여잡고 아이들에게 울면서 "지금 들어오지 않으면 정말 큰일나는 건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며 아이들에게 매달리시는 일이 많았던 수녀님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위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를 들고 와서 읽어보시라면서 주더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대요. 하지만 결국 예쁘게 피지 않겠어요? 저도 지금은 이렇게 흔들리고 있지만 예쁘게 피게 될 거에요."

 

아마도 그 소녀에게는 저 시 한편이 자신의 모습과 투영되어보였던 모양이다. 결국 도종환 시인은 글을 써 주셨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느낀 것이 자신이 그냥 쓴 시 한편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인생의 크고 작은 갈림길에서 달라질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저 시 한편인데..

 

시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저 인생에 일부분일 뿐이다.

 

일본에 어느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있는데, 그 작가가 겪은 일은 이러했다.

 

어느 날 작가는 자신이 살던 집을 철거를 하게 되었는데. 집 철거 중에 우연히 벽에 못이 박힌 채 붙어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도마뱀이 살아있더랜다. 왜냐하면 꼬리에 못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의 머리속에서 약 3년 전부터 가끔씩 뭔가가 휙 휙 지나가던 것이 생각나더란다. 저 못은 이 집으로 오기 전인 3년 전에 박았던 것으로 저 도마뱀은 3년동안 살아있었던 것인데,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동안 뭔가가 휙 지나가던 것이 다른 도마뱀일 것이고, 이 두 마리의 도마뱀이 서로 어떤 사이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한 마리의 도마뱀이 못에 박힌 도마뱀을 위해 먹을 것을 물어다 주었을 것이다.

 

한낱 미물도 이렇게 사랑할지언데, 사람은..?

 

 

행복의 조건

플라톤

 

조금 부족한 듯한 상태가 행복하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사람들이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만한 체력.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벽을 치지 않는 말솜씨.

 

 조금 부족하면 어떠할까? 내 주변에 행복이 있다. 내 주변에 온통 시가 있고, 그저 주변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바라보면 그만이다. 세상의 으뜸은 경제력도 아니고 막강한 힘도 아니다.

 

가장 으뜸은 사랑이다.



사인까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