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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있는 곳/마이클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샌델의 제 1강 '벤담의 공리주의' part 2 - 생각해보기 -


                                 [ 이미지 출처 : EBS 강의 실시간 캡쳐 ]

흥미로운 예시

 

19세기 영국에서 벌어진 유명한 재판에 관한 이야기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 - 실화 -

 

당시 발행된 한 신문은 이와 같이 사건의 이면을 소개하였다.

 

'미뇨넷 호 생존자의 이야기보다 더 슬픈 해난사고는 없었다. 그 배는 희망봉에서 약 2000km 떨어진 남대서양에서 발견되었다. 배에 탄 사람은 4명으로 더들리는 선장이었고 스티븐스는 1등 항해사. 브룩스는 선원이었다. 모두 성품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4번째 승무원은 배의 잡무를 보던 17세 소년 리처드 파커였다. 파커는 고아라서 가족이 없었고, 배를 타고 장기간 바다에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파커는 친구들의 충고를 잘 따르지 않는 편이었다고 한다. '

 

"그는 치기어린 의욕 때문에 배를 탔다. 항해를 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던 것이다." - 마이클 샌델

 

'파도가 배를 강타했고 미뇨넷 호는 침몰했다. 승무원 4명은 구명보트로 탈출하였는데, 마실 물도 없었으며 식량은 순무 통조림 두 개 뿐이었다. 처음 사흘간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넷째 날에는 순무 통조림 하나를 따서 먹었다. 그 이튿날에는 거북이 한 마리를 운 좋게 잡아서 남은 순무 통조림 하나와 거북을 먹으며 승무원들은 다음 며칠을 버텼다. 그 다음 8일간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음식도, 물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그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 마이클 샌델

 

'당시 파커는 구명보트 한쪽 구석에 누워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바닷물을 마셨기 때문이다. 파커는 병이 났고, 죽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19일째 되던 날 선장 더들리는 제비뽑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제비뽑기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어줄 사람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브룩스는 반대했고 제비뽑기는 무산되었다.'

 

'그 이튿날에도 구조해줄 배가 보이지 않자 더들리는 브룩스에게 고개를 돌리라고 말한 뒤, 스티븐스에게 파커를 죽여야겠다고 몸짓으로 말했다. 더들리는 기도를 올리고 소년에게 때가 되었다고 말한 다음 주머니칼로 소년의 경정맥을 찔러 죽였다.'

 

'양심 때문에 그 섬뜩한 하사품을 받지 않으려던 브룩스도 태도를 바꾸었고 나흘간 세 남자는 파커의 피와 살을 먹었다. 그리고 선원들은 구조되었다.'

 

"더들리는 자신의 일기에 구조상황을 놀랍도록 부드럽게 묘사했다.

[24일째, 우리가 아침을 먹고 있을 때 드디어 배 한 척이 나타났다.]" - 마이크 샌델

 

생존자 3명은 독일 선박에 구조되었고, 영국 팰머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채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브룩스는 검찰 측의 증인이 되었고, 피고는 더들리와 스티븐스였다.

 

사건 정황에 대한 논쟁은 없었다. 두 사람은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하며 변호를 했다. 결과적으로 1명의 죽음으로 3명이 생존한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그 주장에 흔들리지 않았다. 살인은 살인이라며 둘을 재판에 넘긴 것이다.

 

법적인 사항은 모두 배제하고 생각해보자. 그들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행동인지 아닌지, 그들이 유죄인지 아닌지.

 

이에 대한 논의는 앞의 어떤 것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논의 중 변환점이 생기었는데, 그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한 학생이 발언에서 그들은 파커에게 제대로 된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가 만약에 스스로 결정하여 선택하였다면 그것은 끔직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몇몇 학생들도 의견을 바꾸기 시작했으나 의견에 점점 살이 붙어가기 시작한다.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자신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한 사항이 아니라면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파커는 병들어 있었고, 심신이 쇠약해져 있는 상황이었으며, 아직 어렸다. 그리고 그들은 어른 3명이었기에, 그들이 파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은 강제성을 띌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행위가 용납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커가 스스로 생각해서 의견을 내놓아야만 된다는 것이다.

 

자, 여기서 만약에 자신이 살인은 어쨌든 살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들에게 마이클 샌델 교수님이 하신 질문을 던져본다.

 

이야기에서는 3명과 1명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파커는 부양할 가족이 없었고, 나머지 3명에게는 영국에 가족이 있었다. 부양할 가족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

 

다시 벤담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벤담은 복지와 공리. 모두의 행복을 생각하라고 했다. 그 모든걸 더해야만 한다고. 그렇다면 사건에 관계된 사람의 숫자는 3대 1이 아니다. 그들의 집에 있는 가족들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당시 런던에서 발행된 신문과 여론은 피고인 더들리와 스티븐스를 동정했다. 그 신문에서는, 피고들이 집에 있는 부양가족을 사랑하고 걱정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런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위는 용납될 수 있지 않을까?

 

파커의 희생으로 그들은 살 수 있었고, 그들의 가족들도  만약 그들이 죽게 되었을 때 닥치게 될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만약 그래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벤담의 공리주의는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