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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아의 자기 계발 이야기/공부가 하기 싫어요!

어느 지루한 공부 이야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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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상담사 오재돈입니다. - 이 이야기는 3편으로 나뉘어 작성될 예정입니다.


오늘 하루도 공부에 지치신 여러분들께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하루도 애 많이 쓰셨습니다!


오늘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쩌면 조금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겠다 싶지만 용기내어 글을 써내려가 보겠습니다.


 이 블로그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저는 '공익근무'를 하면서 '미술치료'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진로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뒤쳐진 진로에 대한 탐색의 시간이었다 생각해서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 두렵기만 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술치료사 2급 자격증을 받는 날 상담사의 길을 가고자 결심했습니다.



 위에 사진의 자격증은 저의 상담사로서의 삶에서 첫 번째 '블럭'이 되어준 미술치료사 2급 자격증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것은 첫 번째 '블럭'이지요. 공부는 마치 '블럭 쌓기'와 같습니다. 이것 하나로는 그 무엇도 하나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전공이 '해양산업학과'였기 때문이지요. 상담에 대해서는 뭣도 모르고 무작정 시작한 공부였기에 더더욱이나 이것은 그저 제가 공부를 했다는 증명서일 뿐이었습니다. 볼품없이 바닥에 처음 하나 놓여진 '블럭'처럼 말입니다.

 

 저의 '공익근무'는 아직 1년이 더 남았었고, 그 1년의 시간동안 다시 미술치료를 이어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익근무가 다 끝나갈 무렵 미술치료사 1급 이론 과정은 모두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직 임상 경험이 없어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익근무'가 끝이 났고, 제게 미술치료를 가르쳐 주신 신동열 교수님이 계시는 '경북외국어대학원대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석사 공부에 도전한 것이지요. 


 

 한창 상담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은 제게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 학교는 첫 학기만에 자진폐교선언을 하며 폐교를 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충격으로 뭘 어떻게 해야할 지 감도 잡지 못한 채 산만한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바빴습니다. 왜 이리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가 한탄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상담심리치료학 석사 공부를 끝끝내 놓지 못하고 2학기를 교수님과 함께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로 편입 이동하여 공부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는 그 동안 제가 알지 못하던 방식의 학기 제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방학 없이 운영되는 계절 학기 제도입니다. 덕분에 쉬지 않고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서울 토박이였던 제가 대학원 진학으로 대구로 이동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 충남으로 학교를 통학하게 되었습니다. 2학기 3학기를 연속으로 쉬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저를 더 힘들게 만든 일이 하나 더 생기고 말았습니다. 교육청으로부터 행정적인 문제로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에게 폐교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당시 몇 명의 교수들이 부정으로 출결처리 하여 학위를 주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제 막 새로 과를 개설하여 들어왔던 저희 교수님과 저희 학과 학생들하고는 전혀 관련없던 일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거의 100% 출석률을 자랑할만큼 다들 공부를 끝까지 해내고자 하는 열정들이 가득했었으니까요. 


 문제는 지난 '경북외국어대학원대학교'의 폐교에 이어 두 번째 폐교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좌절감은 이루 말할 데가 없었습니다. 학생분들도 한계점에 이르러 몇몇은 결국 포기하고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무작정 제주도로 잠시 떠나 머리를 식히며 생각을 정리하던 중 문득 떠오른 사실은 이제 겨우 한 학기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여기서 그만두기에는 그 동안 애써왔던 나의 노력들이 너무 아쉽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교수님과 함께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로 새로 '상담심리치료학'학과가 개설되어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석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무사히 졸업하게 된 것이지요.



마지막 학기 공부의 어려움은 다른 것보다 '한국상담학회'에서 '전문상담사2급'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게 되었습니다. 학회에서 요구하는 교육이수시간과 사례발표회에도 찾아가 여러 사례들을 보고 듣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개인상담 임상경험과 함께 기관에서의 인턴수련기간도 필요했었지요.




 끈질기게 매달려 면접시험을 본 끝에 끝끝내 얻게된 전문상담사 2급 자격증. 그리고 전문상담사2급을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조건이 달성되어 얻게 된 미술치료사1급 자격증입니다.  


결국 저는 상담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며 저에게 가장 큰 위기는 대학원의 폐교가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가장 큰 위기는 다름아닌 공부를 그만 '포기'하라며 수없이 떠올랐던 제 스스로의 마음과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있었더니 하나씩 하나씩 '블럭'들이 쌓여져 올라갔습니다. 


[ 1편 - 상담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 끝. 

[ 2편 - 상담사 갈림길 앞에 서다 ] 에서 계속..